금요일 오후 종묘 앞.

탑골공원에 모이던 노인분들이 종묘 앞으로 옮겨 온 지가

햇수로도 벌써 몇 해를 센다.

 

자리에 앉아 바지 걷고 장기를 두거나

더위 물리는 부채질 하는 정도의 풍경을 생각했는데

오늘 우연히 지나던 길에 본 풍경은 많이 달랐다.

 

웬만한 어린 아이 키보다도 큰 태극기를 걸어놓은 쪽을 연단 삼아

한 연사가 천안함을 언급하며 목놓아 외치면

연사를 바라보고 앉은 이들은 추임새 처럼 박수를 치곤 했다.

 

나름 좌익이라는 노인들이 종묘 앞에서 토론회를 열었다가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했다던 뉴스가

순간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지나가던 길에 차마 종묘 안을 질러가지 못하고

종묘 앞을 빙 둘러 가는데

반대편 쯤 이르니 연설이 끝을 맺는 소리가 들린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하나님 만세!"

절정에 이르던 박수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연사는 능숙하게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놓는다.

 

익숙한 것으로 알았지만 사실은 가장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종묘 앞.

눈 먼 분노의  장작이 지펴지고 있었다.


(2010.8.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