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4년 10월 20일, 노동당 서울시당 [칼럼]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eoul.laborparty.kr/474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이후로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주로 책임소재를 두고, 안전에 대한 주의 멘트 등이 있었음에도 환풍구 위에 있다가 사고를 당한 희생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주장과 안전요원 배치나 펜스 설치 등을 통해 통제했어야 했다는 주최측 책임론이 충돌한다.


1. 희생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주최 측이 좀 더 적극적인 현장 통제를 했어야 하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수 차례 주의 멘트를 했다는 것은 사고 발생 이전에 안전상 위험요인이 있다고 주최 측은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위험요인을 인지하고 주의 멘트를 반복한 후에도 개선이 없으면 적극적인 조치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하지만 주최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불어 희생자 자기책임만 강조할 경우, 유사한 상황에서 주최 측이 경고 멘트만 하고 그에 따르는 실질적인 조치는 하지 않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는 해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


2. 결과적으로 '주의 멘트를 반복하는 것 외에 실질적인 조치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주최 측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



3. 건축을 좀 안다고 하는 분들은 쉽게 '어떻게 그 시설에 사람들이 올라가서 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듯 하다. 건축과 관련한 모든 규제들은 그렇게 생겨나서 지금에 이르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건축물 설계에 있어 소방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내용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규정이 없으면 건축가들은 화재 등 재난 상황을 일일이 시뮬레이션 해서 대응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규정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 건축 설계자는 그를 따르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번에 사고가 났고, 평편하고 넓은 전망대와 같은 환풍구는 행사나 축제가 있을 경우 그 위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계기로 봐야 한다. 그리고 환풍구 설치에 있어서 이러한 경우에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기준 강화를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비용이 증가한다고? 세상의 모든 규제를 철폐하면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우리가 치르는 모든 비용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효과적인 대안이 꼭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나? 미래를 사는 분들이신가?


4. 좀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사고에 대한 의견들을 보노라면 진영적 자기 인식과 진영 방어 논리가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스스로를 희생자, 주최측, 환풍구 설계자 중 어느 하나에 이입시켜서 그들을 두둔하고 방어하는 것에 급급한 식의 '입장 말하기'가 일반적이란 얘기다.


누구도, 사고의 발생 과정에서 그것이 '어느 단계'에서 '예측가능'했는지와 그에 대해서 적절한 '사전 조치'가 충분히 효과적으로 취해졌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마련되어야 할 사고방지책 역시 '올라가지 말라면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저 그들의 잘못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사고의 전개는 사실상 게으른 사고의 자기고백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고 발생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것을 막거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얼마나 취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발전적인 논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가장 답이 없는 것은 '세상이 이 따위니 망해도 싸다'는 식의 염세주의다.


김한울 (노동당 종로중구당협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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